응급실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도착 순서가 아니라 중증도 순서로 진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의료정보팀에서 일하면서 응급실 관련 민원 기록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유형 중 하나가 "늦게 왔는데 먼저 진료받는 게 말이 되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면 납득하는 분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이 기준을 알았다면 그 민원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응급실은 도착 순서가 아니라 중증도 순서로 운영됩니다. 그 기준이 KTAS(한국형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입니다.

응급실은 선착순이 아니다, KTAS 5단계 구조
보건복지부 기준에 따르면 응급실 내원환자의 중증도는 KTAS 기준으로 5등급으로 나뉩니다. 1~2등급은 중증응급환자, 3등급은 중증응급의심환자, 4~5등급은 경증응급환자 및 비응급환자로 구분됩니다.
KTAS는 숫자가 낮을수록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의미하는데, 따라서 1등급 환자가 5등급 환자보다 우선 처치를 받습니다.
같은 시간에 도착해도 1등급 환자와 5등급 환자의 대기 시간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이 응급실 구조의 핵심입니다.
아래 표는 KTAS 5단계 분류와 해당 증상 예시입니다.
| 등급 | 분류 | 해당 증상 예시 | 처치 목표 시간 |
| 1등급 | 소생 | 심정지, 무호흡, 의식 없음 | 즉시 |
| 2등급 | 긴급 | 극심한 흉통, 호흡곤란, 중증외상, 의식장애 | 15분 이내 |
| 3등급 | 응급 | 중등도 복통, 고열, 두통, 골절 의심 | 30분 이내 |
| 4등급 | 준응급 | 경미한 통증, 경증 열, 단순 열상 | 1시간 이내 |
| 5등급 | 비응급 | 탈수 없는 설사, 발목 염좌, 상처 소독 | 2시간 이내 |
위 내용은 보건복지부·대한응급의학회 KTAS 기준이며, 동일 증상이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등급이 다르게 판정될 수 있습니다.
KTAS 5등급 비응급환자는 급성기이지만 긴급하지 않은 상황으로, 탈수 증상 없는 설사, 심하지 않은 물린 상처, 발목 염좌 등 근육 통증, 상처 소독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표를 보면 "나는 아파서 왔는데 왜 오래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4~5등급은 아프지만 즉각 처치가 생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증상도 등급이 달라지는 이유
현장에서 자주 목격한 오해가 있습니다. 증상 이름이 같으면 등급도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두통을 예로 들면, 단순 긴장성 두통과 갑작스러운 뇌출혈 의심 두통은 같은 '두통'이어도 KTAS 등급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3~4등급, 후자는 1~2등급이 될 수 있습니다.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은 증상 이름이 아니라 활력징후, 통증 강도, 발생 속도, 동반 증상입니다. 응급실 입구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먼저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과정을 트리아지(Triage) 라고 하며, KTAS 등급은 이 평가를 통해 결정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러한 기준으로 환자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같은 질환이라도 얼마나 위중한지 또는 긴급한지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이 핵심입니다. 본인이 느끼는 통증의 크기와 의료진이 판단하는 위중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기 시간이 길다고 해서 본인의 상태가 경시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2025년부터 달라진 것, 119와 병원 기준이 통일됐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10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공포하고 2025년 1월 1일부터 적용했습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의 중증도 분류 기준이 통일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119구급대가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준과 병원 응급실의 KTAS 기준이 달랐습니다.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내린 판단과 병원 도착 후 재평가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생겼고, 이송 과정에서 정보 공유에 혼선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병원과 구급대가 동일한 기준으로 중증도를 평가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의 응급처치 제공, 중증도에 근거한 적절한 의료기관 선정과 이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건복지부는 밝혔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달라지는 점은 이것입니다. 119를 불렀을 때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평가한 등급과 병원 도착 후 판정 등급이 이전보다 일관성 있게 연결됩니다.
중증 환자가 경증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비효율이 줄어드는 방향입니다.
응급실을 직접 가야 할 때와 119를 먼저 불러야 할 때
이 질문을 실무에서 꽤 많이 받았습니다. "걸어갈 수 있으면 직접 가도 되나요?"
걸어갈 수 있는지 여부는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증상의 성격이 기준입니다.
아래 상황에서는 119를 먼저 부르는 것이 적절합니다.
- 가슴 통증이 갑자기 생겼고 식은땀이 동반될 때
- 말이 갑자기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다리가 감각이 없을 때
- 의식이 흐려지거나 주변 반응이 없을 때
- 호흡이 빠르고 얕아지면서 입술이 파래질 때
- 극심한 두통이 갑자기 시작됐을 때
보건복지부는 "큰병이라고 생각되면 119에 신고해 안내에 따르면 되고, 119는 중증도에 적합한 병원으로 이송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동네 병·의원이나 중소병원 응급실을 먼저 방문해 진찰 결과 중증이라고 판단되면 큰 병원으로 이송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단순 발열, 가벼운 찰과상, 만성 통증의 일시적 악화처럼 생명에 즉각적인 위험이 없는 상황은 응급실보다 야간 당직 의원이나 가까운 의원급 의료기관을 먼저 이용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합니다. 응급실 대기 시간이 짧아지고, 정작 중증 환자의 처치가 지연되지 않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Q&A
Q1. 응급실에서 KTAS 등급을 본인이 요청해서 바꿀 수 있나요? 등급은 의료진의 임상적 판단으로 결정됩니다. 환자가 직접 요청해서 변경되지 않습니다. 다만 대기 중 증상이 악화되었다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재평가를 통해 등급이 상향될 수 있습니다.
Q2. 4~5등급인데 응급실에 가면 안 되나요? 가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고, 같은 증상이라면 근처 의원급에서 더 빠르게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야간이나 휴일에는 응급의료포털에서 운영 중인 당직 의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Q3. 119를 불렀는데 경증이라고 판단되면 어떻게 되나요? Pre-KTAS 평가 후 적합한 의료기관으로 안내받습니다. 반드시 대형병원으로만 이송되지 않으며, 중증도에 맞는 가까운 의료기관으로 연결됩니다.
Q4. 같은 증상으로 두 번째 방문하면 등급이 올라가나요? 반복 방문 여부보다는 현재 상태가 기준입니다. 이전에 같은 증상으로 왔다는 사실 자체가 등급을 높이지 않습니다.
Q5. 응급실 진료비는 KTAS 등급에 따라 다른가요? 응급실 본인부담금은 중증도와 방문 의료기관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증으로 판정된 경우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이용 시 본인부담금이 높아질 수 있으며, 세부 기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저는 응급실 관련 민원 기록을 처음 접했을 때 이 기준을 왜 입구에서 안내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대기가 길어질 때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불안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데 그 불안의 상당 부분은 기준을 모르는 데서 옵니다.
KTAS 등급이 무엇인지, 왜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지를 알면 대기실에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25년부터 119와 병원이 같은 기준으로 환자를 분류하게 된 것은, 응급의료 체계가 환자 중심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변화입니다. 이 기준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 더 나은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본 글은 의료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으며, 개인 건강 상태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보건복지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 (2025년 1월 적용)
- 보건복지부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기준 고시 (KTAS)
- 대한응급의학회 KTAS 위원회
-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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